People's Solidarity for Participatory Democracy





서울 32 아 1681호 개인 택시기사 김원식씨(51세)가 사이버 참여연대에 초대받았다고 하자 그의 부인은 '우리 남편 업그레이드되겠네'라고 했단다. 참여연대 회원으로 활동한지 일년 째 되는 그는 자신이 과연 사무처장 같이 유명한 분의 뒤를 이어 인터뷰를 당할만한 사람인지에 대해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참여연대의 사무처장이 중요한 이유는 막강한 회원들이 뒤에 있기 때문이니 회원 김원식 씨야말로 아주 중요한 분에 속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해야만 했다. 더구나 그는 지금까지 회비를 한번도 거르지 않은 성실회원이다

이건 매우 중요한 사실로서 김형완 협동처장에 따르면 회원의 진실성은 회비납부에 달려 있고 회비를 내지 않고 말로만 떠드는 회원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회원 분들이여, 명심하시라, 사람 좋아 보이는 김형완 처장에게도 이런 마각이 도사리고 있음을. 물론 누구든 어느 조직과 뜻을 같이 한다면 당연히 회비부터 내야하는 것이 기본이다.

뜻을 함께 한다는 것과 회비나 기부금을 선뜻 내는 일이 의외로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은 수없이 겪어 보셨으리라. 성실한 회비납부. 그가 이번 인터뷰에 초대된 이유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기억하시라, 이 소녀의 말씀을!

그와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에 난 10분 늦었다. 민방위훈련에 그만 발목이 잡혀버린 것이었다. 훈련내용이나 방식이 몇 년이 지나도록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 감동적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국민적 행사인 훈련 때문에 그도 늦으리라 생각했지만 나의 기대는 빗나갔다. 사무실의 노랑색 벽과 일치하는 유니폼을 단정히 입은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모범기사였다. 출가한 스님에게 많은 사람들이 '왜 중이 되셨느냐'고 서슴없이 묻듯이 나도 참여연대 회원에게 물었다. 왜 참여연대를 지지하는가?

'택시기사나 정치인은 껌이잖아요. 잘 씹히니까요.' 정치인과 함께 '씹힌다면' 뭐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일을 위해 나선 단체가 있다니까 반갑고 그렇지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꼬박꼬박 회비를 내는 것이라 생각하지요. 비록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내가 내는 돈으로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이 부정한 돈 먹지 말고 순수하게 일에만 전념했으면 해서요.'
그가 가장 끌린 부분은 소액주주운동. 힘없고 나약하기만 하다고 생각한 소시민들이 철옹성 같은 대기업을 상대로 힘을 겨룰 수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현재 서울의 택시 수는 거의 7만에 육박하고 있다. 그중 개인, 모범 택시가 4만 7천대이고 나머지가 회사 택시이다. 그러면 김원식 기사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니로 같은 터프가이? 노우. 파리의 택시운전사의 홍세화씨 같은 지사적 기사? 놉! 그는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이웃 기사 아저씨이다. 다만 그의 택시를 타면 누구든지 조금씩은 놀랄 일이 있다. 그의 일터인 택시 뒷면에 씌여진 홈페이지 주소.

www.taxidriver.co.kr

'아, 아저씨 정말 홈페이지 있으세요? 와, 완전히 N세대시네!' 그가 내미는 명함에 새겨진 인터넷 사이트를 보고 손님들은 하나 같이 감탄한다. 사이버를 이해하는 택시기사!

그는 충북 영동이 고향이다. 4남 2녀 중 중간으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부터 회사 자가용을 모는 것에서 출발하여 회사택시를 7-8년간하고 개인택시를 한지 4년째. 총 20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 기사이다. 부인 이수자 씨와 사이에 남매를 두고 강서구에 살고 있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고 아들은 휴학을 하고 입대 날짜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는 인근동네를 중심으로 도는 다람쥐 운전을 한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쉴 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주로 넷 서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마치 약수터에 가지요 하는 말처럼 자연스럽게 넷 서핑이란 말이 나온다. 넷맹인 나는 완전히 기가 죽어 입을 다물었다. 2년 전인가 영국여왕이 연두교서에서 '요즘은 사람들이 인터넷의 바다를 서핑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한다는 말을 무시로 듣는 시대가 되었다'고 격세지감의 감회를 피력한 적이 있었다. 인터넷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아들이 중3때 부터 인가 컴퓨터를 사줬거든요. 그 동안 3대나 부셔 먹었지요. 그러더니 아주 달인이 되었어요. 아들 등 너머로 보다가 나도 해 봐야겠다 싶어서 시작한 거지요. 택시 드라이버란 도메인은 내 동생이 지어주었어요.' 일산에 사는 그의 동생은 펜화로 한국의 명승지를 그려 책도 낸 적이 있는 재주꾼인데 컴퓨터에도 도사란다. 물론 김원식씨는 부인과 함께 여가가 나면 산에도 간다. 신문은 주로 '독투란'을 꼼꼼히 살펴본단다. 독투란? 베트남 당서기장 관련 기사인가? '아, 그거 독자투고란이란 말이예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아침 8시부터 일을 시작하면 12시까지 일하고 점심 먹으러 들어가서 2시까지 쉬고, 다시 7-8시까지 일하고, 그리고 저녁 먹고 9시에 나와서 새벽 2시까지 일한다. 하루 세끼 집에서 챙겨야 하는 부인이 힘들겠다. '좀 그런 점이 있지요. 마음놓고 어디 나가려고 해도 잘 안되겠지요. 아, 혼자서 밥 먹을 수도 있지만 집에 있어주면 좋지요.'

우리 어머니 친구 분 중에 남편이 의사이신 분이 있었다. 그 옛날에 의사 부인이었으니 경제적으로는 아주 넉넉한 살림살이를 하신 분이다. 그런데 늘 하시는 말씀이 '하루 세끼 꼬박꼬박 밥 차려 주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 아침 일찍 출근하는 회사원 남편을 둔 사람들이 부러워.' 여자 운전기사들이 차를 몰면 남편들이 집에서 밥상 차려놓고 기다려 주진 않을 거다.

여성 권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저도 딸아이가 있으니 남의 일이 아니지요. 우리나라도 남녀평등에서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앞으로도 더욱 좋아져야지요.' 그다지 특이한 대답은 아니다. 그 대신 그는 전에는 담배 피울 때 아내나 아이들에게 일일이 재떨이를 가져오라고 시켰는데 요즘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아예 담배를 끊어버렸다는 점. 그리고 살아갈수록 아내가 고맙고 믿음직스럽다는 말을 덧붙인다.

흔히 택시기사가 여론의 창이라고 하는데 평소 손님들과 얘기를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요즘 한창 선거 얘기가 주종을 이룰텐데? '그럼요, 내내 아무 말도 안하고 가는 것은 서로에게 고역이지요. 선거 철이라 그런지 지역적인 감정으로 얘기하는 분들이 많아요. 전 그런 것은 못 참지요.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요. 손님하고 의견이 다르면 막 따지기도 하고요.'

그는 아주 소신이 뚜렷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참여연대 회비래야 얼마 안되지요. 다른 복지단체 두 세 곳에도 회비를 보내는데 한 달에 이 삼 만원 정도 됩니다. 그렇지만 연말에 이웃돕기 성금 같은 것은 한번도 안내요. 평소 하던 대로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때라고 특별히 ....' 연말연시 이웃돕기는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조수간만식 행사임에는 분명하다. 연례행사이니 내년이 기약되긴 하지만 신실하게 믿을만한 대상은 아닌 것 같다.

혹시 종교를 갖고 있으신지? '난 특별한 종교 없어요. 사람들이 자기 종교가 최고라고 떠들어대는 것도 보기 싫어요. 우리 집사람이 천주교 신자인데 혼자 다니는 거야 말 안 하지요.' 그럼 자신을 믿는가? 그는 다만 이 세상을 혼자라도 성실하게 묵묵히 일하는 것이 능사라고 믿는 독수공권형의 사람인 것 같다.

현장감을 느끼기 위해 로드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김원식 기사의 옆자리에 탔다. 모두들 운전석 옆자리를 조수석이라고 하는데 난 그게 늘 궁금하다. 조수석이라면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 차림의 진짜 조수가 앉아야 하는 게 아닌가해서.

운전석 옆에 참여연대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여러 권 놓여 있었다. '손님들께 읽어보시라고 권하기도 하고 또 어떤 손님은 직접 챙겨 가시기도 하지요. 참여연대 일을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러나 사실 그는 아직 끝까지 읽어보지 못했단다.

우리는 당연히 합승할 손님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승객을 찾아 나서니 신기하게도 그 복잡한 도로의 모든 풍경이 소거되고 오직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만 눈에 띄는 것이었다. 도로변에 반쯤 발을 내딛고 서 있거나 그냥 무심히 서 있는 사람인데도 용케 눈에 금방 띄었다. 앞으로는 택시 잡으려고 크게 손을 휘젓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신세계 백화점 뒤에서 중년부인이 탔다. 김 기사는 '어서 오세요. 앞에 분은 손님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참여연대에서 나오신 분이세요.' 김 기사의 참여연대 소개가 너무도 당당하고 분명했다. 내 어깨가 우쭐거릴 정도였다. 나도 영업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인사 한마디. '안녕하세요.'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무표정하게 '네에 -' 짧은 대답을 할뿐이었다. 무슨 인터뷰를 차안에서? 그리고 참여연대는 또 뭐야? 그리고 뭔지 알고 싶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뒷좌석의 손님도 있고 하니 좀 더 멋있는 질문을 던져 봐야지. 그러나 결국 아주 전통적인 질문이 되고 만다. 우리나라 교통질서 수준이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요? '글쎄요, 나아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양보하는 마음은 여전히 없어요.

여자 분들은 주로 뒷좌석에 많이 타고 남자 분들이 앞좌석에 주로 타시는데 어떤 분들은 절대 양보를 못해 주게 해요. 내차 앞으로 차가 끼어 들면 그 차에 대고 막 욕을 하면서 끼워주지 말라고 그래요. 얌체 없다면서 말이죠.

그럼 제가 손님한테 여쭤 보지요. 손님은 끼어 들기 한 적 없으시냐고? 아, 그러면 자기는 절대 그런 적 없다고 펄쩍 펄쩍 뒤는 거예요. 그 손님이 진짜 그런지 안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운전하다 차선 바꿀 일이 없을 수 있나요. 차선을 바꾸는 일을 끼어 드는 것만으로 보는 관점도 바꿔야 해요. 그리고 끼어 들든 말든 양보해 주는 건 내가 알아서 하는 일인데, 왜 상관하는지, 원.'

손님들 중에는 개인택시가 앞에 서면 그냥 보내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회사 차에 비해 속도가 떨어진다나. 택시 타는 이유가 뭐냐고, 바빠 죽겠는데 안전은 무슨 안전. 일일이 양보해주고 신호 제대로 지키는 양식 있고 여유 있어 보이는 기사를 보면 속이 천불 날 일이 아니겠는가. 갑자기 회사택시 기사를 인터뷰하자고 했다면 그리 쉽사리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일단 그 날치 사납금을 해결한 뒤라야 얘기가 되어도 됐을 것이다.

오후라서 길이 막히는 탓에 운전 중에 얘기하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때 뒷좌석의 손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응 그래 케잌 잘 받았어? 뭐라고? 오렌지가 빠졌어? 아니, 웬일이야. 키위는? 있어? 딸기도? 응, 다행이네. 그래 좀 이해 해줘. 미안해.' 전화를 끊고 아주머니는 다시 조용해졌다. 케익 가게를 하시는 분인가 보았다. 생크림 케잌 위에 장식으로 얹는 오렌지가 빠진 모양이다. 오렌지가 빠지면 맛이 없어지는 걸까? 궁금했지만 다시 앞좌석의 인터뷰는 계속되어야했다.

우리나라 택시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싼 편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럼요. 많이 싸지요. 그러니 고급 대중 교통수단이라는 말을 지키지를 못 해요. 아이엠에프 이후 택시 타는 분들이 줄어들면서 손님이 많이 걸러졌는데, 요즘 다시 옛날 같아졌지요. 중학생까지도 택시를 겁 없이 타요. 정말 바쁜 분들이 비싼 요금 생각하면서 타야 되는데...'

뒷자리 벨이 또 울렸다. '여보세요. 응 나야. 뭐, 케잌이 왜? 뭐 오렌지가 없어? 아니 요즘 우리 공장이 왜 이러지, 그래 알았어.' 또 오렌지가 없다는 불평이 접수된 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평화시장 앞에서 내렸다. '죄송합니다. 오시는 중에 불편하신 점은 없었는지요?' 김 기사가 잔돈을 거슬러 주면서 인사를 했지만 오렌지 때문에 기분이 상한 우리 케잌 가게 아주머니는 별다른 말도 없이 가버렸다. 조수인 나도 또 한마디 '안녕히 가세요'하고 거들었다.

그러나 대답 없는 메아리. 에이, 그 아주머니도 자기 명함을 내밀면서 아휴, 그 단체 잘 알죠. 옳은 일만 골라서 하는 데잖아요. 저는 케잌 가게를 해요. 행사도 많이 있으실 텐데 앞으로 우리 가게 이용 좀 해 주세요. 제 명함에 이 메일 주소도 있거든요. 언제든 연락 주세요... 했으면 금상첨화 였을텐데.

아주머니는 뚱하게 어깨만 보이고 차에서 내려가 버렸다. 그 순간 오렌지에 대한 해답이 나왔다. 오렌지가 빠지면 맛이 문제가 아니라 색깔이 문제인 것이다. 두 건의 불평전화를 접수한 아주머니의 고민이 이해되었다. 케잌은 먹자고만 하는 음식이 아니다. 장식이 관건인 음식인데. 아, 역시 사람을 많이 만나봐야 세상사에 대한 눈이 넓어지는구나.

택시 일을 하다보면 온갖 군상의 인간을 보실 텐데,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겠군요? 그 중에는 참기 힘든 손님들도 있을 텐데.. 중간에 내려놓고 싶은 손님도 있지 않을까? '아, 있지요. 그렇지만 내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 적도 없어요. 일단 제 차에 타면 제 고객이니까요. 길에서 엎드려 동냥하는 거지손님도 탄 적이 있었지만 내가 당신은 거지니 내리시오 할 수 없지요.

밤늦게 일 마치고 가는 아가씨들이 타기도 하지요. 술에 취한 게 부끄럽고 자신의 처지가 그래서 그런지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러면 난 이렇게 말하지요. 나도 택시기사가 직업이고 아가씨도 그 일이 직업이다.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러지요.'

그래도 나름대로 김 기사에게 사람 보는 잣대가 있다. '안전벨트는 기본이지요. 앞자리에 앉으면서도 안전벨트를 안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나 전보다는 안전벨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진 편이지요. 손님들이 벨트를 매면 이 손님은 안전하겠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요. 안전운전은 제가하니까요. 그런 걱정은 안 들고 그 대신. 아, 이 손님은 정말 에프엠대로 사는 분이구나, 합리적이고 경우 바르게 사는구나 싶어 더욱 호감이 가는 거지요.' 그에게는 안전벨트가 손님의 의식수준을 매김 하는 잣대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지 좋은 사회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교통안전 관리 공단에서 초빙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택시요금 안내고 도망치는 손님들이 있습니까? '있지요.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있어요. 그런 사람들 만나게 되면 씁쓸하지요. 그런데 아예 돈이 없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편이 나아요. 괜히 집에 가서 가져오겠다고 사람 속이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요.'

실제로 추운 겨울 날 한밤중 골목에서 몇 분씩이나 기다려 본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저 인간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자신의 인생관까지 총집합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저건 돈 없어 도망 친 거로구먼 하고 운전대를 돌려 곧장 나와 버리면 사람을 못 믿는 자신에 대해 돌아다 봐야할 것이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다보면 멍청이라는 생각도 들 것이고.......

'애초에 요금이 없다고 말한 손님들한테 걱정 마시라고, 목적지까지 모셔드리겠다고 하지요. 그러면 굉장히 고마워해요. 그런데 너무 과잉반응 하는 것도 보기가 그래요. 너무 그렇게 고마워하실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어떤 손님은 돈이 모자라니까 요금 되는 곳까지만 태워 달라고 하세요.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지요.'

너무 친절한 것 아니냐고 했더니 '나만 그런 것 아니에요. 다른 많은 기사들도 그렇게 하시고 있어요. 길 가다가 노인 분들이나 장애인들 보면 더 잘 대해 주려고 하지요. 누구든지 그런 마음 안 들겠어요? 당연한 거예요.' 그러면 뉴스에 나오는 장애인들 승차거부 사건은 무슨 말인가? '못된 경우를 당하신 분들이 어쩌다 있어서 그게 부각된 거지요. 흔히 좋은 일들은 묻혀 버리기 쉽고 나쁜 일만 크게 나타나기 쉽지요.'

그가 요금 때문에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봤자 손해지요. 돈이 나올 리도 없으니 차라리 잊어버리고 일을 계속 하는 게 낫지요. 될 수 있으면 빨리 잊어버리는 게 제일 나아요.' 수입이 아주 좋은 날은 14만원까지 번다고 한다. 옛날에는 어느 손님을 어디까지 태워서 얼마를 받고 한 것들이 집에 돌아와서도 생생히 그려졌는데 요즘은 손님 수를 세지도 않고 자세히 기억이 나지도 않는단다. '아마도 나이 탓이겠지요.'

아니, 익숙해지면 세지 않고 어림 잡히는 것이 더 정확한 것인지도 모른다. 대략 하루에 4,5십 명 태우면 그날은 아주 성과가 좋은 날이다. 하지만 그 절반도 못 채우는 날도 왜 없을까. '안 되는 날은 더욱 피곤하고 짜증나고 그렇지요. 집 생각밖에 안나요. 손님을 찾아서 같은 곳을 몇 바퀴 돌다보면 허탈해지지요. 이러고 연료 낭비하느니 집에 가서 쉬는 게 낫지 않나 싶은 거지요.'

운전일 하시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라도 있나요? '아니요. 별로 없어요. 난 뭐 특별한 기억이 없어요. 보람있었다거나 힘들었다거나 한 게 글쎄....' 그는 운전을 하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별로 없어요. 전 그다지 극단적으로 뭘 생각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에요'

하지만 엊그제 모일간지에 다시 문제로 떠오른 택시 승차 거부에 대해 그도 할말이 있다. '승객들이 창문을 열고서는 가는 방향을 물어보시는데 그건 곧 기사에게 승차를 거부할 수 있다는 권한을 주는 것과 같은 거지요. 그냥 타고 목적지를 말하면 되는 일인데요. 그리고 승차거부를 할 때는 택시 넘버를 적어서 귀찮더라도 성실하게 고발해야 이런 나쁜 버릇이 고쳐지는 겁니다.'

세상일에 비교적 무념하게 산다고 한 그였지만 다시 인터넷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말에 생기가 돌았다. '사람들이, 참 인터넷을 이용할 줄 알면 차암 이로운 게 많은데,..' 얼마 전 서울개인 택시기사 조합에다가 말했단다. '택시기사들도 인터넷을 할 시대가 왔다. 우리도 시대 흐름에 맞춰 나가야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내가 나서서 할 용의도 있다.'

운전기사들의 인터넷 이용에 대해 그는 한 예를 들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만 봐도 그래요. 택시 증차문제에 대해 할 말이야 많겠지만 굳이 뭘 던지고 해서 불상사를 낼 필요가 없지요. 인터넷을 이용해 몇 천 명이 동시에 항의성 이 메일을 보내 완전히 마비시켜 버릴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의견관철에 훨씬 효과적일 거예요?' 이미 포화상태인 제주도 택시 수를 고려하지 않고 계속 증차하는데 반발한 기사들이 항의 데모 중 도지사에게 물건을 던져 머리에 상처를 낸 사건이었다.

'저녁을 먹고 있다가 TV뉴스를 봤지요. 얼른 먹고 컴퓨터 앞으로 가서 홈피 (홈페이지라는 말을 여러분은 이미 아시겠지만)를 열어봤더니 플라즈마라는 아이디를 가진 분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왔더군요, 그래서 알아보겠노라 하고 케이비에스를 검색해서 자세한 내용을 알려줬지요.' 그는 신나게 얘기를 이어 나갔다.

'아들 녀석이 지가 군대가기 전 아빠 홈피 업그레이드 해주겠다고 하는 걸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요. 그거 뭐 그렇게 되면 내 홈피가 아니지요. 자바니 플래쉬 써서 해 놓으면 좋기야 하지만 내 수준하고는 안 맞지. 난 내 수준에 맞게 하면서 내가 배워서 업그레이드 하는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난 그렇게 살아요'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던 시절 자꾸만 묻는 아버지를 귀찮게 여기던 아들이 머쓱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자신의 차를 타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친절하고 밝은 분위기로 손님을 모실까 고민한다고 한다. 인터넷이나 홈페이지 운영도 그중 한 방법. 승객과 자신 사이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그는 믿고 있다. 인터넷 얘기를 하면 손님이 내릴 때까지 얘기가 계속되기가 다반사여서 그의 인사가 '아이구, 죄송해서 어쩌지요. 쉬셔야 되는데 제가 너무 얘기를 많이 했지요?' 오히려 즐거웠다는 인사를 하고 가는 승객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컴퓨터를 차가운 기계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니에요. 수많은 사람들을 친구로 맺어주는 좋은 물건이지요.' 여러 직종의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얘기하는 것을 더 없이 즐기고 있다. 지금 그의 홈피에 들어가 보면 그간 그가 엮어 놓은 재미있는 얘기가 실려 있다. 나중에 책으로 내셔도 되겠다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사실은 그럴려구요.'

택시기사 김원식씨의 하루는 서핑으로 시작해 서핑으로 맺음한다. 택시를 몰면서 거친 세상을 서핑하고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서 무한대의 정보의 바다를 서핑한다. 그래서 즐거운 김원식 씨 덕분에 참여연대도 업그레이드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누구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 저런 사람이 참여한 단체라면 뭔가가 있겠구나. 에라, 나도 참여연대에 클릭하자, 그리고 회비도 내자...라고?

※ (가칭) 참여연대 운전자모임이 3월 31일 (금) 저녁 7시 안국동 사무실에서 첫 준비모임을 갖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참석바랍니다
(문의 : 시민사업국 723-4251 송해영 팀장songsea@pspd.org )

권은정

한겨레신문과 한겨레21 런던통신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영국과 유럽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보통 사람, 특별한 사람, 유명한 사람, 덜 유명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저서로 <젠틀맨 만들기>, 번역서로 줄리언 반즈의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 조아나 트롤로프의 <타인의 아이들>이 있다.